비정기 지출 관리 (현금흐름표, 통장분리, 잉여소득)
매달 예산을 세워도 특정 달이 되면 어김없이 무너졌습니다. 추석, 결혼식, 여름휴가가 겹치는 달이면 저축은 사실상 포기였고, 그러면서도 매번 "이번 달만 특이한 거야"라며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구조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틀리는 이유, 비정기 지출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고정 지출(fixed expense)이란 매달 금액이 변하지 않는 지출로, 월세나 통신비, 보험료 같은 항목입니다. 변동 지출(variable expense)은 외식비나 쇼핑비처럼 달마다 달라지는 지출을 뜻합니다. 이 둘은 경험치가 쌓이면 어느 정도 예측이 됩니다. 그런데 제가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 이유는 세 번째 항목, 비정기 지출(irregular expense) 때문이었습니다. 비정기 지출이란 명절, 경조사, 휴가, 자동차 보험, 종합소득세처럼 매달 발생하지는 않지만 반드시 오는 지출을 말합니다.
추석은 매년 옵니다. 지인 결혼식도 해마다 한두 건은 생깁니다. 그런데 저는 그달이 되면 매번 "이번 달은 지출이 좀 많네"라며 당황했습니다. 여름휴가 경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숙소 예약할 때는 그 금액만 보다가, 교통비와 식비와 기념품 값이 더해지면 예상의 두 배가 됐습니다. 결혼 축의금이 한 달에 두 건 겹치면 그달 저축은 없는 달이 됐습니다.
일반적으로 돈 관리가 안 되는 이유를 의지력 부족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그 시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구조가 없는 것입니다. 고정 지출과 변동 지출만 관리하고 비정기 지출을 방치하면, 아무리 꼼꼼한 사람도 특정 달에는 반드시 무너집니다. 제가 그 증거였습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가계금융 관련 자료에서도, 가계 지출 계획 실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비계획적 지출 항목 누락이 꼽히고 있습니다.
현금흐름표로 내 돈의 실체를 파악하다
뒤늦게 제가 시작한 것은 현금흐름표(cash flow statement) 작성이었습니다. 현금흐름표란 일정 기간 동안 돈이 어디서 들어오고 어디로 나갔는지를 항목별로 정리한 표입니다. 기업 회계에서 쓰는 개념이지만, 개인 재정 관리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소득 항목을 먼저 정리하고, 그 아래 지출을 고정·변동·비정기 세 가지로 나눠 기록하는 방식입니다.
제가 직접 써봤는데, 1년치 비정기 지출을 모두 합산해보니 생각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습니다. 명절 선물과 용돈, 여름휴가, 경조사비, 자동차 보험료, 연말 모임 비용을 합치면 연간 400만 원을 훌쩍 넘었습니다. 그걸 12로 나눠 매달 약 35만 원씩 별도 통장에 미리 모아두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연간 예산이 흔들리지 않는 경험을 했습니다. 미리 쪼개놓은 돈은 쓸 때도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이미 만들어놓은 돈"이라는 인식이 생기니까요.
소득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라면 매출(revenue)과 실질 소득을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매출이란 사업으로 벌어들인 총금액이고, 실질 소득은 거기서 임대료, 인건비, 원자재비, 그리고 이듬해 5월에 납부할 종합소득세(comprehensive income tax)까지 제외하고 남은 금액입니다. 종합소득세란 근로 외 소득을 포함한 1년 치 전체 소득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직장인의 연말정산과 같은 개념입니다. 이걸 구분하지 못하면 매출은 높은데 남는 돈이 없다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프리랜서로 일하는 지인이 연 수입이 8천만 원인데 종합소득세 고지서를 받고 나서야 실질 소득을 처음 계산해봤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도 남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소득이 들쑥날쑥한 경우라면, 직전 3개월 평균 소득의 80%를 기준으로 계획을 세우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평균 소득이 500만 원이면 400만 원으로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나머지 20%는 예비자금 통장에 넣어 두어야 합니다. 이번 달 소득이 700만 원이라고 해서 200만 원이 공돈이 된 게 아닙니다. 다음 달에 300만 원만 들어올 수 있다는 신호일 수 있으니까요.
통장분리가 만들어주는 것, 잉여소득
통장분리(account separation)는 말 그대로 용도별로 통장을 나눠 관리하는 방법입니다. 하나의 통장에서 모든 지출이 나가면, 현재 잔액이 얼마인지는 알아도 그 돈이 어디에 써야 할 돈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구분이 없는 상태에서는 눈에 보이는 잔액이 전부 쓸 수 있는 돈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잔액이 많아 보이는 달에 큰 지출이 생기고, 다음 달에 낭패를 보는 일이 반복됩니다.
제가 정리한 통장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 월급 통장: 소득이 들어오는 기본 통장. 이곳에서 저축과 각 통장으로의 이체가 이루어집니다.
- 소비 통장: 고정 지출과 변동 지출을 처리하는 통장. 그달에 쓸 수 있는 생활비만 이체합니다.
- 계절 지출 통장: 비정기 지출을 대비하는 통장. 연간 비정기 지출 예상액을 12로 나눈 금액을 매달 이체합니다.
- 예비자금 통장: 평균 소득을 초과한 달의 잉여분, 또는 긴급 상황을 위한 완충 통장입니다. 공금(public fund)처럼 관리하며, 임의로 꺼내 쓰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통장이 네 개라는 게 번거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한 번 구조를 잡아놓으니 오히려 신경 쓸 일이 줄었습니다. "이번 달 좀 빠듯한데"라는 막연한 불안 대신, "소비 통장에 얼마 남았다"는 명확한 판단이 가능해졌습니다. 감이 아닌 숫자로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잉여소득(surplus income)이란 소득에서 지출을 뺀 실제로 남는 금액입니다. 소득이 늘어도 남는 돈이 없다는 말은 대부분 이 잉여소득이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줄었다는 뜻입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 분위가 올라갈수록 소비 지출도 함께 증가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소득이 늘어도 잉여소득이 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통장분리는 이 구조적 함정을 막아주는 장치입니다. 저축률(savings rate)이란 소득 중 저축에 배분하는 비율로, 경제 활동 연차가 5~10년 이내라면 최소 40%를 목표로 삼는 것이 현실적으로 권장됩니다.
돈 관리는 결국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납득했습니다. 비정기 지출을 별도 통장으로 미리 분리하고 나서 처음으로 연말에 예산이 남는 경험을 했습니다. 지금 당장 1년치 비정기 지출 목록을 적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명절, 경조사, 휴가, 보험료, 세금. 합산한 금액을 12로 나눠 매달 조금씩 따로 모아두는 것만으로도, 특정 달의 예산이 터지는 일은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조언이 아닙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m0fDfWpAN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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