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준비 (사교육비, 자아실현형 경제활동, 직업전환)
혹시 "노후 준비는 나중에 해도 되겠지"라고 생각하신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30대 초반, 월세 내고 생활비 맞추는 것만으로도 빠듯한데 수십 년 뒤 이야기가 와닿을 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긴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고, 노인 빈곤율은 OECD 1위입니다. 이 숫자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건 부모님을 보면서였습니다.
사교육비, 줄이면 진짜 노후가 보입니다
자녀 사교육비를 왜 노후 준비 이야기에서 꺼내느냐고 의아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그랬습니다. 그런데 숫자를 보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국내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은 코로나 시기였던 2020년 약 19조 4천억 원이었는데, 불과 4년 만에 29조 2천억 원으로 늘었습니다. 교육 환경이 그 사이 드라마틱하게 바뀐 게 아님에도 지출이 1.5배로 불어난 겁니다.
이게 왜 그럴까요? 저는 이 증가분 상당 부분이 자녀를 위한 투자라기보다 부모의 불안과 공포를 해소하는 비용이라고 봅니다. 주변에서 다들 시킨다니까, 우리 아이만 뒤처질까 봐, 라는 심리가 사교육비를 눈덩이처럼 키웁니다.
사교육비를 아예 없애라는 말이 아닙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자녀와 진지하게 대화해서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면 현재 지출의 20~30%는 충분히 줄일 수 있습니다. 그 돈을 어디에 쓰느냐가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매달 20만 원을 ETF(Exchange Traded Fund), 즉 주식시장 전체를 추종하는 분산 투자 상품에 넣는다고 가정해 봅니다. ETF란 특정 지수나 자산군을 따라 움직이는 펀드로, 개별 종목보다 리스크가 낮고 소액으로도 시작할 수 있는 장기 투자 수단입니다. 복리 효과를 고려하면 20년 후 이 금액은 상당한 노후 자산이 됩니다. 저도 IRP 계좌와 연금저축을 뒤늦게 열면서 복리 계산기를 돌려봤는데, 10년만 일찍 시작했어도 지금보다 훨씬 나은 출발점에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솔직히 아까웠습니다.
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란 개인형 퇴직연금 계좌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직장을 옮기거나 퇴직할 때 퇴직금을 굴릴 수 있는 개인 전용 연금 계좌로, 세액공제 혜택까지 받을 수 있어 노후 준비의 기본 수단으로 꼽힙니다. 지금이라도 시작한 게 다행이라는 마음과 후회가 동시에 들었던 경험이었습니다.
노후 준비가 부족하면 결국 자녀에게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의 독립을 바라며 사교육비를 쏟아붓지만, 정작 부모 자신의 노후가 무너지면 그 짐은 고스란히 자녀에게 돌아갑니다. 선택과 집중이 자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역설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아실현형 경제활동, 지금부터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혹시 은퇴 후 뭘 하며 살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막연하게 쉬어야지, 라고만 생각하셨다면 이 통계를 한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통계청 e-나라지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용률은 36.2%에 달합니다. 65세가 넘었는데도 세 명 중 한 명 이상이 일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유입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야만 해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중 1위입니다. 비교하자면 일본은 20.2%, 미국은 22.8% 수준이니 한국이 거의 두 배입니다. 이 수치는 65세 이상 노인 중 10명 중 4명 이상이 중위소득의 60%도 안 되는 돈으로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평생 성실하게 일했는데도 노후가 이렇게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저는 부모님을 보며 직접 목격했습니다.(출처: OECD 빈곤율 데이터)
이 현실이 지금 30대, 40대에게도 반복될 수 있다는 게 무섭습니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 즉 1964년~1974년생 약 954만 명이 앞으로 10년 안에 대규모로 은퇴하게 됩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세대가 은퇴하면 소비 감소만으로도 경제 성장률이 연 0.4% 추가 하락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미 1%도 안 되는 성장률에 이 충격이 더해지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요?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개념이 자아실현형 경제활동(Self-Actualization Work)입니다. 자아실현형 경제활동이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 아니라,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면서 하는 일로 소득이 크지 않아도 지속할 수 있는 활동을 뜻합니다. 반대 개념인 생계형 경제활동은 인간이 25년 이상 지속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자아실현형 경제활동이 뭔지 모르겠다면, 문화·레저 지출의 일부를 배움에 투자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유튜브에서 100만 구독자를 가진 채널들의 공통점이 뭔지 아시나요? 대부분 돈이 될까를 먼저 계산한 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그냥 찍기 시작했습니다. 구독자 30명이든 300명이든,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기록하는 과정 자체가 노후 소득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노후 준비를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사교육비를 점검하고 불안 기반의 지출을 선택과 집중으로 줄인다. 줄인 금액의 일부를 IRP 또는 연금저축 계좌에 넣는다.
- 문화·레저 예산의 절반을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배움에 투자한다. 자격증이 목표가 아니라, 내가 오래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목표다.
- 장기 ETF 투자를 소액이라도 시작한다. 복리 효과(Compound Interest)는 시간이 자산이므로, 금액보다 시작 시점이 중요하다.
직업전환, '직'이 끝나도 '업'은 남습니다
정년 연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회사를 더 다녀야 한다는 부담감인지, 아니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법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인지,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그런데 저는 사회적 정년 연장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게 있다고 봅니다. 바로 마음속 정년을 먼저 없애는 일입니다.
여기서 직업전환(Career Transition)이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직업전환이란 기존의 직함과 조직에서 벗어나 자신의 업(業), 즉 직업적 정체성과 역량을 새로운 형태로 이어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은퇴를 그냥 '그만두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직에서 업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노후를 전혀 다르게 만듭니다.
'직(職)'이란 회사에서 부여받은 직함과 역할입니다. 과장, 부장, 팀장. 이건 퇴직과 동시에 사라집니다. 반면 '업(業)'은 내가 진짜로 잘하고 좋아하는 것, 즉 보케이션(Vocation)에 가깝습니다. 보케이션이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자신의 소명이나 천직에 해당하는 활동으로,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역량입니다.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 은퇴 후에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직과 업이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제 경험상, 이 전환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은퇴 후 공백이 생각보다 훨씬 크게 느껴집니다. 부모님을 보면서 가장 힘들어 보이셨던 순간은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라, 수십 년간 자신을 정의하던 '직'이 사라졌을 때의 정체성 공백이었습니다. 그게 다시 일자리를 찾으시게 만든 원인 중 하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금 직장에 다니고 있다면, 내가 퇴직 이후에도 이어갈 수 있는 '업'이 뭔지를 지금부터 고민해 보시기를 권합니다. 공인중개사나 바리스타 자격증처럼 취업을 빠르게 하기 위한 자격증이 아니라, 내가 오래, 즐겁게, 소득이 크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요. 그 답을 지금 찾기 시작한 사람과 나중에 급하게 찾는 사람의 노후는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노후 준비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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