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후 미국 증시 (인플레이션, FOMO, 엔캐리)
솔직히 저는 '물가가 오르면 무조건 금리가 올라 주식이 떨어진다'는 공식만 머릿속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월 2.4에서 3.3으로 0.9%p 뛰었는데도 시장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걸 보면서, 그 공식이 얼마나 단순했는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전쟁이라는 큰 불확실성이 걷히고 나면 그동안 덮여 있던 위험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 있다는 점, 오늘은 그 부분을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인플레이션에도 성격이 있다는 것, 저는 몰랐습니다
제가 처음 투자를 시작했을 때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이제 금리 오른다, 주식 판다'는 반응이 자동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이걸 알고 나서야 시장의 반응이 비로소 이해됐습니다.
- 유동성 인플레이션(Liquidity-driven Inflation): 시장에 돈이 과도하게 풀려 발생합니다. 2021년 코로나 시기 각국 정부가 현금을 살포하면서 물가가 급등했던 게 대표적입니다.
-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Demand-pull Inflation):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가 공급을 초과할 때 가격이 올라가는 현상입니다. 수요가 과열됐다는 뜻이므로 연준은 금리 인상으로 대응합니다.
-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Cost-push Inflation): 원자재나 에너지 비용이 올라 생산비 자체가 높아지면서 물가가 뛰는 현상입니다. 이번 고유가발 물가 상승이 바로 여기에 해당합니다.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의 핵심은 원인만 제거되면 물가가 빠르게 안정된다는 점입니다. 유가가 올라서 생긴 물가 상승이라면, 전쟁이 끝나 유가가 내려오는 순간 인플레이션도 빠르게 꺾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연준(Fed)이 이번처럼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곧바로 금리 인상 카드를 꺼내지 않는 겁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출처: Federal Reserve)가 통화정책 결정 시 물가의 '성격'을 중요하게 따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방심은 금물입니다.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라도 고유가 상태가 장기화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우리나라처럼 원유를 전량 수입하는 구조라면, 유가가 오르는 동시에 원달러 환율까지 오를 경우 이중고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5월 CPI가 4%를 넘어선다면, 그때는 연준도 더 이상 관망만 할 수 없는 상황이 됩니다.
FOMO가 판단력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제가 직접 겪었습니다
삼성전자가 1년 만에 400%, 금이 3년 만에 320% 올랐다는 얘기를 보면 누구든 가슴이 쿵 내려앉습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몇 년 전 주변에서 코인으로 몇 배를 벌었다는 이야기가 쏟아질 때, 적금만 붓고 있던 저에게 친구가 "넌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 한마디 던졌고, 그게 방아쇠가 됐습니다.
FOMO(Fear Of Missing Out)란 '나만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공포심을 뜻합니다. 지금 안 사면 영영 못 탄다는 조급함이죠. 저는 그 심리에 떠밀려 충분히 공부하지도 않은 채 목돈을 한 종목에 넣었습니다. 결과는 예상할 수 있겠지만, 사자마자 떨어졌고 조금 빠지니 겁이 나서 손해를 보고 팔아버렸습니다. 사는 것도 파는 것도 전부 공포가 결정한 셈이었습니다.
그 경험 이후로 저는 뉴스 하나, 지인의 수익 인증 하나에 흔들릴 때마다 의식적으로 멈추는 연습을 합니다. 어차피 FOMO로 투자한 자산은 조금만 흔들려도 공포로 팔게 됩니다. 사고 파는 타이밍을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시장의 공포가 결정하는 구조가 되는 겁니다. 이것이 "조급한 사람의 돈이 차분한 사람에게 이동한다"는 말의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이 끝나도 위험은 끝나지 않는다, 엔캐리 청산 문제
전쟁이 끝나면 시장이 환호하며 올라갈 거라는 기대,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기대감은 이미 상당 부분 주가에 선반영(priced in)되어 있습니다. 주가에 선반영됐다는 말은 좋은 소식이 실제로 발표되기 전에 시장이 먼저 그 소식을 반영해 올라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정작 좋은 뉴스가 나왔을 때 주가가 오히려 빠지는 '소문에 사고 뉴스에 팔아라'는 현상이 생기는 겁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전쟁이라는 큰 이슈가 덮고 있던 위험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점입니다. 그 중 하나가 엔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 청산 리스크입니다. 엔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극히 낮은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 수익률이 높은 미국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방식입니다. 지난 10년간 이 방식으로 미국 자산에 유입된 자금이 약 3조 4,0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5,000조 원에 달합니다.
일본은행(BOJ)이 올해 추가 금리 인상을 단행한다면 엔화 차입 비용이 올라가고, 미국에 투자된 자금이 대규모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이 청산 과정에서 미국 주가가 상당한 조정을 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은행의 통화정책 방향은 일본은행 공식 사이트(Bank of Japan)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쟁 뉴스에 묻혀 잊고 있었을 뿐, 이 뇌관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전망보다 시나리오, 지금 투자자에게 필요한 태도
트럼프 상호관세 법안의 연방대법원 무효 판결, 엔캐리 청산 리스크, 고용 지표 변화, 그리고 CPI 추이. 이 네 가지 변수가 전쟁 종전 이후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 요인들입니다. 물론 이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제가 실수했던 부분이 여기에도 있었는데, 한 가지 시나리오만 머릿속에 그려놓고 그게 틀렸을 때 당황해서 허둥댔거든요.
전망은 어디까지나 시나리오입니다. 전문가의 분석도 빗나갈 수 있고, 실제로 자주 빗나갑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특정 자산을 '사야 한다, 팔아야 한다'는 결론보다, '이런 상황이 오면 나는 이렇게 대응한다'는 대응 매뉴얼을 미리 만들어두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PI가 4%를 넘으면, 엔캐리가 본격 청산되면, 실업률이 5%를 넘으면. 각각의 경우에 어떻게 움직일지를 미리 생각해두면 공포가 결정을 대신하는 일이 줄어듭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회계 마인드'입니다. 회계 마인드란 지금 이 돈이 써도 되는 돈인지, 아니면 미래의 나를 위해 남겨둬야 하는 돈인지를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손해를 보고 나서야 저는 이걸 제대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투자하기 전에 그 돈의 성격부터 먼저 묻는 것,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전쟁이 끝나도 시장은 곧바로 좋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대감은 이미 반영됐고, 그 뒤에는 관세 분쟁, 엔캐리 청산, 물가 재상승이라는 변수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전부 팔고 나오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투자 시점이 3년 이상이라면, 오히려 이런 조정 국면이 분할 매수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시장의 공포에 휩쓸리지 않고, 내 돈의 성격을 먼저 확인하고, 여러 시나리오를 미리 그려두는 것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금융 투자 조언이 아닙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d90krfI_L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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