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생활비 (항목별 증감, 은퇴 준비, 의료비)
은퇴하면 당연히 지출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들도 독립했고 출퇴근도 없으니까요. 그런데 부모님이 은퇴하신 후 몇 년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근거 없는 기대였는지 실감했습니다. 노후 생활비는 줄어드는 게 아니라 항목이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은퇴 후 지출이 줄 거라는 생각, 왜 하게 될까요?
직장을 다니는 동안 지출 구조를 떠올려 보면, 꽤 많은 항목이 "일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자녀 교육비, 대출이자, 직장 동료들 경조사비, 점심값, 교통비. 은퇴하면 이것들이 한꺼번에 사라지니 지출이 크게 줄어들 거라고 믿는 건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심리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은퇴 준비를 하실 때 "앞으로 돈 덜 쓰셔도 되잖아요"라고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안일한 말이었는지 싶습니다.
통계상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착각을 합니다. 실제로 은퇴 후 부부 기준 평균 노후 생활비를 235만 원 정도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숫자는 현실과 꽤 동떨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도시에서 생활한다면 235만 원으로는 여유 있는 생활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의료비와 식비를 감당하기도 빠듯한 수준이 될 수 있습니다.
고정 지출(Fixed Expenditure)이란 매달 일정하게 빠져나가는 경상비, 관리비, 공과금처럼 생활 자체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말합니다. 이 항목들은 은퇴 후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냉난방비가 오르고, 관리비도 함께 올라갑니다. 부모님 댁 전기세가 은퇴 직후 눈에 띄게 올랐던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항목별로 따져보면 늘어나는 쪽이 훨씬 많습니다
노후 생활비를 제대로 예측하려면 지금 쓰고 있는 항목을 하나씩 꺼내 놓고, 은퇴 후 이 항목이 늘어날지 줄어들지 직접 따져봐야 합니다. 막연하게 "덜 쓰겠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숫자를 써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각 항목의 증감을 분류해 보면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 경상비용(관리비, 냉난방비, 교통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 증가
- 자녀 교육비: 자녀가 독립했으므로 삭제
- 의료비 및 건강 관리비: 병원비에 영양제, 건강 보조식품까지 포함하면 현재의 세 배 수준까지 증가 가능
- 대출이자: 은퇴 전에 정리되므로 삭제
- 문화레저비: 주말에만 즐기던 여가가 매일로 확장되어 두 배 이상 증가
- 여행 경비: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국내외 여행 빈도 증가, 두 배 수준
- 경조사비: 사회활동 범위가 줄면서 절반 수준으로 감소
이렇게 놓고 보면 줄어드는 항목은 교육비, 대출이자, 경조사비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그대로이거나 늘어납니다. 50대 기준으로 현재 월 480만 원을 쓰고 있다면, 이 방식으로 계산했을 때 은퇴 후 생활비가 600만 원 수준으로 올라가는 건 충분히 현실적인 숫자입니다. 25% 증가,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닙니다.
순자산(Net Asset)이란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실질 보유 자산을 말합니다. 출처: 통계청에 따르면 50대 가구의 평균 순자산은 약 5억 1,000만 원 수준으로 집계됩니다. 얼핏 크게 느껴지지만, 이 돈을 예금에 넣고 연 3% 수익으로 매달 350만 원씩 인출할 경우 60세 은퇴 기준으로 74세 전후에 바닥이 납니다. 수익률을 두 배인 6%로 올려도 78세까지 버티는 수준에 그칩니다.
의료비는 왜 세 배나 늘어나는 걸까요?
처음 이 계산을 봤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의료비가 현재의 세 배라는 말이 너무 과장된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병원비만 의료비가 아닙니다.
나이가 들면 건강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집니다. 부모님이 은퇴하신 후 가장 먼저 늘어난 게 영양제 종류였습니다. 예전에는 종합비타민 하나 드시던 분들이 관절에 좋다는 것, 혈압에 좋다는 것, 눈에 좋다는 것을 하나씩 추가하셨습니다. 여기에 주기적인 건강검진 비용, 실손보험(실손 의료비보험)으로 커버되지 않는 비급여 치료비, 한방 치료나 물리치료 비용까지 합산하면 금액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불어납니다.
실손보험(실손 의료비보험)이란 실제로 발생한 의료비 중 본인 부담금을 보장해 주는 보험을 말합니다. 있으면 분명히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비급여 항목이나 건강 기능식품, 영양제 등은 실손으로 커버되지 않기 때문에 체감 지출은 실손이 있어도 상당히 늘어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실손이 있다고 해서 의료비 걱정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의 1인당 연평균 의료비는 50대와 비교했을 때 두 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여기에 건강 관리 비용을 포함하면 세 배 수준의 증가는 오히려 보수적인 추정일 수 있습니다.
은퇴 준비, 나만의 숫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은퇴 후 생활비를 국가 평균치인 235만 원에 맞추고 준비하는 것, 저는 이게 가장 위험한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평균이라는 숫자는 생활 수준이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을 한데 섞어 놓은 수치라서, 나에게 딱 맞는 숫자가 될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인출률(Withdrawal Rate)이란 은퇴 자산에서 매년 꺼내 쓰는 비율을 말합니다. 흔히 안전 인출률로 연 4%가 언급되는데, 이는 30년간 자산이 바닥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고 알려진 수치입니다. 하지만 이 계산도 본인의 실제 생활비 규모를 알아야 의미가 있습니다. 생활비 규모가 틀리면 인출률 계산 자체가 무의미해집니다.
제가 권하는 방식은 지금 당장 가계부를 꺼내서 지출 항목을 경상비, 의료비, 문화레저비, 여행비, 경조사비, 교육비, 대출이자 순서로 분류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항목 옆에 은퇴 후 이 금액이 늘어날지, 줄어들지, 그대로일지를 솔직하게 적어 보는 것입니다. 늘어난다면 얼마나 늘어날지 배수로 추정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저속 은퇴(Gradual Retirement)란 완전한 은퇴 대신 소득이 줄더라도 사회 활동을 일정 기간 이어가는 방식을 말합니다. 5억을 가진 상태에서 월 350만 원씩 쓰면 74세에 바닥이 나지만, 월 150만 원이라도 추가로 벌면 86세까지 버틸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이 있습니다. 수익률을 높이는 것보다 기간을 늘리고 원금을 지키는 전략이 훨씬 유효합니다. 이 방식을 알고 나서 제 노후 준비 방향도 달라졌습니다.
부모님을 통해 직접 목격했기 때문에 확신이 생겼습니다. 은퇴 후 생활비는 줄지 않습니다. 항목이 바뀔 뿐이고, 줄어드는 것보다 늘어나는 쪽이 훨씬 많습니다. 지금부터 본인의 지출 항목을 하나씩 꺼내어 증감을 직접 따져보시길 권합니다. 그 숫자가 나와야 진짜 은퇴 준비가 시작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재무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은퇴 설계는 전문 재무 상담사와 상의하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_qhjQq09UW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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