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준비 (재테크 착각, 경제력 생존력, 마라톤 투자)

1990년대생이 은퇴 후 소득 없이 살아야 할 기간은 최대 40년입니다. 인류 역사상 이런 세대는 없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등이 서늘해졌습니다. 노후 준비가 중요하다는 건 알았지만, 막상 제 머릿속은 결혼 자금, 내 집 마련, 차 문제로 꽉 차 있었거든요. 노후는 늘 뒷전이었습니다.

노후 준비 (재테크 착각, 경제력 생존력, 마라톤 투자)

재테크가 노후를 책임진다는 착각

일반적으로 노후 준비 하면 재테크를 먼저 떠올립니다. 주식 수익률이 좋았던 시기에는 특히 더 그랬습니다. "저때 1억만 넣었어도"라는 말이 주변에 넘쳤고, 저도 그런 계산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안정적인 노후를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재테크 수익보다 자기 일에서 오래, 안정적으로 성공한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재테크는 그 위에 얹히는 것이지, 토대 자체가 될 수는 없어요.

워렌 버핏도 그렇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를 투자의 귀재로만 기억하지만, 결국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회사를 일구고 운영하는 사업 성공이 그의 부의 핵심입니다. 베르나르 아르노,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최상위 부자들의 공통점은 투자 수익이 아니라 자기 본업의 성공입니다.

저도 처음 ETF 투자를 시작할 때는 단기 수익을 기대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S&P 500이나 나스닥 100 같은 지수 추종 ETF(Exchange Traded Fund, 주식처럼 거래 가능한 펀드 상품)는 1~2년 단위가 아니라 10~20년 단위로 보는 자산이라는 게 보이기 시작했거든요. 그 이후로 단기 주가 변동에 예전만큼 흔들리지 않게 됐습니다. 지금 넣는 돈이 17년, 18년 뒤에 꺼낼 돈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재테크만 믿고 노후를 설계하는 게 위험한 이유는 하나 더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큰 수익이 나면 그게 오히려 핸디캡이 됩니다. 그 기준이 기본값이 되어버려서 이후 평범한 수익률에도 실망하게 되거든요. 마라톤을 뛰는데 처음 100m를 너무 빨리 달린 셈입니다.

경제력, 생활력, 생존력이 진짜 기준

노후 준비에서 정말 중요한 세 가지를 꼽으라면 경제력, 생활력, 생존력입니다. 얼핏 들으면 단순해 보이지만,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춘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경제력(經濟力)이란 단순히 고소득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쉽게 말해 잉여소득(剩餘所得), 즉 수입에서 지출을 뺀 나머지를 꾸준히 늘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대기업에 다닌다고 경제력이 있는 게 아니에요. 제가 직접 주변을 보면서 느낀 건데, 소득이 높을수록 소비도 함께 늘어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결국 잉여소득이 0에 수렴하는 구조는 같더라고요. 반대로 소득이 적어도 소비를 잘 통제해서 잉여소득을 조금씩 늘려가는 사람이 장기적으로는 훨씬 단단한 재무 구조를 만들어 갑니다.

생활력은 요리, 청소, 빨래, 정리 정돈처럼 혼자서도 일상을 꾸릴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걸 왜 노후 준비에 넣느냐 싶겠지만, 이것들을 못 하면 전부 비용이 됩니다. 노후에 혼자가 되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어요. 실제로 통계청의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1인 가구 비율은 계속 증가하는 추세입니다(출처: 통계청). 생활력이 없으면 그 비용이 노후 자금을 갉아먹습니다.

생존력은 제가 가장 공감하는 항목입니다. 저는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본업 외에 다른 방식으로 수익을 만드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그냥 부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게 생존력을 키우는 과정이라는 걸 압니다. 본업이 끝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경험과 자신감, 그게 생존력의 핵심입니다. 택배 아르바이트를 해봤거나 소규모 무인 가게를 운영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은퇴 이후에도 이 경험이 실제 소득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갖추기 위한 준비 항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잉여소득을 늘릴 수 있는 소비 통제 습관 만들기
  2. 요리, 청소, 빨래 등 혼자 일상을 운영할 수 있는 생활 기술 갖추기
  3. 본업 외에 소득을 만들어본 경험 쌓기 (부업, 프리랜서, 소규모 운영 등)
  4.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절제 훈련, 특히 문화·레저 지출부터 조정하기

돈에도 속성과 때가 있다

월급이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에게 각각 얼마를 쓸지 비율을 정하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저축률(SR, Savings Rate), 즉 소득 대비 저축과 투자에 배분하는 비율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소득의 70%는 지금 소비에, 30%는 미래를 위해 쓰기로 정했다면, 그 30%가 왜 30%여야 하는지의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냥 남으면 저축하는 방식은 결국 현재 소비가 항상 이기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돈에는 속성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노후 자금은 20년 후에 꺼낼 돈이니 변동성이 높은 자산에 공격적으로 투자해도 큰 문제가 없습니다. 반면 내년에 써야 할 결혼 자금이나 전세 보증금은 절대 주식에 넣어선 안 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순서를 거꾸로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노후 자금은 안전한 금리형 상품에 넣어두고, 단기에 써야 할 돈을 주식에 투자하는 겁니다. 좋은 장에서는 잠깐 행복하지만, 시장이 흔들리는 순간 버티질 못합니다.

급한 돈은 흔들릴 때 시장을 이탈하게 만듭니다. 부자들이 주가 급락장에서도 여유로운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 돈이 없어도 당장 생활에 지장이 없는 여유 자금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일반 투자자들이 같은 장에서 손절하는 이유는, 그 돈이 사실 여유 자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투자의 성패가 종목 선정보다 돈의 성격 구분에서 먼저 갈린다는 것을요.

한국금융연구원의 가계금융 분석에서도 노후 준비가 부족한 가구의 주된 원인으로 단기 자금과 장기 자금의 혼용이 반복적으로 지목됩니다(출처: 한국금융연구원). 돈을 구분해서 다루는 습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노후 마라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노후 금수저(老後 金숟가락)는 흔히 상속받은 재산이 많은 사람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노후 금수저란 근로소득 없이도 자본소득(資本所得)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자본소득이란 내가 일하지 않아도 자산이 만들어내는 수익, 즉 배당금, 임대료, 이자 같은 소득을 말합니다. 수백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노후 생활비를 근로 없이 조달할 수 있는 사람이 노후 금수저입니다.

이 상태에 도달하는 건 100m 달리기가 아닙니다. 저도 ETF 투자를 시작하면서 이걸 실감했습니다. 나스닥 100이 단기적으로 떨어질 때도 예전처럼 불안하지 않게 된 건, 17~18년 뒤를 기준으로 계산해두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오르든 내리든 그게 제 계획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이 마음의 여유 자체가 노후 준비의 성과라고 느낍니다.

노후 준비에서 진짜 적은 거창한 투자 실패가 아닙니다. "나중에 시작해도 돼"라는 생각, 즉 긴급하지 않아서 계속 미루게 되는 그 습관입니다. 중요한 일은 항상 긴급하지 않고, 그래서 항상 뒤로 밀립니다. 은퇴 10년 전부터는 문화·레저 지출을 서서히 줄이고 담백한 소비에 익숙해지는 연습이 필요한 것도 이 이유에서입니다. 갑자기 바꾸면 못 버티거든요. 연착륙(軟着陸), 즉 충격을 줄이며 서서히 전환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노후 준비는 재테크 하나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일의 지속성, 잉여소득을 늘리는 절제 훈련,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생활력, 본업 밖에서도 돈을 벌어본 경험, 그리고 돈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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